좋은 팝송

The River in the Pines (솔밭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빅사슴 2010. 7. 15. 10:06
The River in the Pines (솔밭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 Joan Baez| ◎행복☆음악방◎
子眉山 조회 204 | 10.04.04 08:02 http://cafe.daum.net/dmy0310/DLit/1604
The River in the Pines 


♬ The River in the Pines - Joan Baez
    솔밭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Oh, Mary was a maiden 
When the birds began to sing 
She was sweeter than the blooming rose 
So early in the spring 
Her thoughts were gay and happy 
And the morning gay and fine 
For her lover was a river boy 
From the river in the pines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면
메리는 이른 봄 피어나는 장미보다 
더 매혹적인 소녀랍니다
즐겁고 행복한 생각에
상쾌하고 좋은 아침
솔숲 사이의 강에 사는 소년이 
그녀의 연인이기 때문이죠
Now Charlie, he got married 
To his Mary in thespring 
When the trees were budding early 
And the birds began to sing 
But early in the autumn 
When the fruit is in the wine 
I'll return to you, my darling 
From the river in the pines 
지금 그 소년 찰리는 
소나무들이 막 싹트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에 메리랑 결혼을 하고
초가을이 되자 술익을때쯤
솔숲 사이의 강에서 돌아오겠노라며 떠나갔죠
'Twas early in the morning 
In Wisconsin dreary clime 
When he ruled the fatal rapid 
For that last and fatal time 
They found his body lying 
on the Rocky shore below 
Where the silent water ripples 
And the whispering cedars blow 
황량한 기후의 위스콘신의 이른 아침이었어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적인 물살에 휩쓸려 
빠져나오려한 시각이..
고요한 물결이 일렁이고
속삭이는 삼나무가 울창한 곳 아래의 
암석 해안에서 그가 숨진걸 발견했어요
Now every raft or lumber 
That's come down, the chip away 
There's a lonely grave that's 
visited by drivers on their way 
They plant the wild flowers upon it 
In the morning fair and fine 
'Tis the grave of two young lovers 
From the river in the pines 
현재는 뗏목이나 기타 다른 잡동사니들이
내려와서 작은 조각들로 사라지죠
거기엔 길가던 운전자들이 방문해서
야생화를 심은 외로운 무덤이 있어요
아침마다 꽤 괜찮게 보이는군요
이게 솔숲 사이 강가에서 살던
두 연인들을 기리기 위한 무덤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한 곡입니다. 존_바에즈 의 대표곡중 하나인 River in the pines 입니다.

- 젊은 시절 지성과 미모와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지니고 높은 인기를 얻었던 존 바에즈
명문 보스턴 대학 출신의 지성적인 가수이자 70년대 저항운동의 기수였던 밥딜런과 함께 포크 가수로 유명한 조운 샨도스 바에즈(Joan Chandos Baez)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의 스태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멕시코 출신 물리학자인 아버지 알베르트 바에즈(Albert Baez)와 스코틀랜트 출신의 어머니 존 브릿지 바에즈(Joan Bridge Baez)의 세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희곡 작가이자 교사였고, 아버지는 물리학자이자 유네스코(UNESCO)의 콘설턴트 일도 맡아 미국은 물론 전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연구하는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어린 존 바에즈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바에즈는 아버지가 멕시코계라는 이유와 그녀의 갈색 피부로 인해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로 여러 방위산업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유능한 인재였지만 핵무기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런 제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바에즈가 반전평화운동가이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이런 아버지의 영향과 어릴 때 환경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고 맑은 미소를 간직한 바에즈.
바에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 어떤 위험도 무릅썼습니다. 베트남의 하노이,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에서 노래했고, 억울하게 구금당한 사람의 사면을 위해서 노래했습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반체제 인사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를 위해 노래했고, 캄보디아를 위해 노래했습니다.

레이건 집권후 더 한층 강화된 미국의 보수주의 물결 속에서도 1981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5주간의 콘서트와 인권 실태조사 여행을 강행했습니다. 여행 도중 그녀는 경찰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이 모든 일을 끝까지 해냈습니다. 또한 그녀는 핵무기 제조 및 사용 중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83년 유럽을 순회공연했고,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파리의 비폭력주의에 바치는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12만 명의 군중 속에서 노래해 프랑스 최고의 명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이런 활동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한때 1년공연의 개런티로 10만불을 제시한 프로모터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포크음악은 의식에 관여하는 음악이다. 누구든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음악이라고 말할 수 없다."